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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brush stroke)은 그림을 그리는 내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상이 앉으며 시작된다.이렇게 시작되어지는 붓질은 나와 대상을 오가며 그 간격 사이에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찾으려는, 또는 발견하려는 것, 더 나아가 텅 빈 그 사이에 실재를 채워 넣는 것이다.

내가 ‘그리기’보다 ‘붓질’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행위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화면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붓질은 찍고 긋는다. 내 제한된 조건이 가리키는 방향을 찍고 거기에 어리는 색을 긋는다. 작업과정에서 붓질은 형태를 낳고, 내 인식의 흔적을 드러내며, 우연의 흔적마저 감추지 않는다. 한계를 넘어선 어떤 것조차 나타나고 사라지곤 한다. 나의 의도와 예상치 못한 일들 그것들의 맞닿는 경계 사이를 투시한다. 그 경계를 다듬고 싶은 것이다. 붓질은 나에게서 비롯하지만 나를 떠나 스스로 해내기도 한다.

이렇게 경계 사이를 오가는 과정 속에서 화면에 나타나는 것이 붓질이 낳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붓질도 스스로 지닌 길들여진 자유의 한계를 맞는다. 붓질에 자유를 부여하려는 것이 마지막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붓질과 대상은 처음을 충동하고 실험과 관찰을 하는 시간에 존재하지만 내가 그림과 마주하는 단계에서는 임무를 다한다. 내가 보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 그 사이에서 실재를 찾아가는 작업이 내 그림그리기이다.

_2018년 3월 정호찬





감각과 인식의 매개공간으로 증폭된 회화적 사유에 대하여

정호찬 작가의 작업적 특징을 살펴보면 그가 자신의 회화에서 어떤 물리적 대상을 재현하려 하거나 내면의 심리적 상황을 표상하려 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특정 대상과의 관계 혹은 그로부터의 감각에 대한 기록을 캔버스 위에 남겨두려 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해 ‘남겨두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은 그가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회화적 목표를 두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대상을 닮게 그리기보다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시작된 자신의 회화적 행위 즉 붓질(brush stroke) 그 자체에 관심을 집중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정호찬 작가에게 있어서 붓질이란 작가의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캔버스와 작가 사이의 다양한 차원의 역학관계, 예를 들어 작가의 근력과 캔버스의 탄력이 상호 관계할 때 나타나게 되는 작용-반작용과 같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현상 등,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상징적 행위이자 이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통로로 인식했던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붓질을 하는 것에 대해 “나와 대상을 오가며 그 간격 사이에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찾으려는, 또는 발견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작가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히 어떤 힘의 균형이 발생됨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감각 주체와 대상인 외부세계 사이에서 행위와 반응 혹은 자극과 감각이 일어나는 전체 프로세스를 확인하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작업자로서 대상 그 자체가 아닌 대상과 관계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이 같은 작가적 태도는 표현주의적이거나 추상적인 작업으로도 보일 수 있는 정호찬 작가의 작업이 재현이나 표현과 같은 오랜 회화적 전통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작업하고자 하였음을 말해준다. 사실 정호찬 작가의 작업은 대상의 형상적 이미지보다는 붓질에 의한 터치와 질감이 더 드러나는 방식이기에 일견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회화가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재현하거나 추상화하는 표현을 전제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본질적으로 이미지에 대한 추상 방식의 환원이나 그 어떠한 재현 혹은 표현적 회화, 그리고 그에 대한 반동적 어떤 흐름과도 관련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작가와 대상과 사이 영역에서 감각과 행위가 일어난 프로세스의 결과물들이 회화가 되고 흔적으로 남겨지도록 한 정호찬 작가의 작업은 주체와 타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사유방식을 초월하고자 하는 시각이 느껴진다. 그의 작업에서 감각과 표현의 범주 내의 주체와 타자가 관계하는 사이 영역은 매개공간으로 작동하면서 주체와 타자를 연결시킬 뿐만 아니라 상호 침투하게 하고 서로 팽창하고 증폭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증폭된 감각은 증폭된 행위 및 인식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분명 작가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붓질인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작가가 알고 있던 기질과는 한걸음 떨어져 있는 감각의 잉여물들을 작가 스스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확장된 주체를 보고 경험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침투된 타자들이 만들어낸 허구적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들은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각적이고, 명료하기 보다는 흐릿하며, 자기 자신처럼 보이다가도 물질 덩어리로 느껴지게 될는지 모른다. 정호찬 작가는 이러한 작업에 대해 “텅 빈 그 사이에 실재를 채워 넣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현실과 비현실이 실재와 비실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엎치락뒤치락 하듯 모호한 감각의 흔적만 남겨진 것 같은 그의 회화는 결국 존재와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들을 다시금 되뇌도록 만들고 있다.

_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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